축구판에서 흔히 쓰이는 ‘월드클래스’라는 표현은 전 세계 무대에서 탁월한 기량을 뽐내는 이들에게 붙는 영예로운 수식어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유명 스포츠 매체인 키커(Kicker)지가 분데스리가와 독일 국적 선수들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키커 랑리스테’ 안에서도 월드클래스(WK), 인터내셔널 클래스(IK), 그리고 내셔널 클래스(NK)라는 세 가지 범주가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은 이를 월드클래스라는 단어의 시초로 보곤 한다. 그러나 이렇듯 권위 있는 매체가 매번 랭킹을 발표하더라도, 결국 월드클래스 판정에는 확실한 규정이 없어 대중의 의견이 항상 엇갈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손흥민의 월드클래스 국내외 평가
우리나라 축구 팬들 사이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월드클래스 논쟁이 뜨거운 사례는 단연 손흥민 선수일 것이다. 잉글랜드 무대에서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꾸준한 퍼포먼스로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가 되었기에, 손흥민을 월드클래스 선수로 인정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트로피 획득 경험이 부족하거나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아직 그를 완벽한 월드클래스로 부르기 이르다고 본다. 그러나 해외 언론과 팬들이 손흥민을 월드클래스 공격수라 칭하는 경우가 빈번한 걸 보면, 이 지점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논쟁임을 알 수 있다.
세 가지 무대에서의 뛰어난 활약

문득,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월드클래스라 부를 만한 기준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먼저, 가장 중요한 축은 세 가지 무대(리그 경기, 클럽 간 국제대회, 국가대표 경기) 모두에서 빼어난 활약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한 국가 내에서만 특출나도 “국내용 선수”라는 이미지를 깨기 어렵고, 국가대표로만 돋보인다 해도 흔히 “애국자형 선수”라는 별칭을 얻곤 한다. 예컨대 스페인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자국 대표팀까지 평정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월드클래스라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진정한 세계 무대에서 꾸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한두 무대에만 집중해 성과를 낸 것을 이유로 월드클래스라고 단정 짓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꾸준함과 자기관리의 중요성
두 번째로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안정적인 기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즌 빼어나게 활약했다가 곧바로 부진에 빠지는 경우를 두고 우리는 흔히 ‘반짝 스타’나 ‘거품’이라고 부른다. 요즘 이적 시장에서는 한 시즌 만의 성과가 거대한 이적료로 연결되는 사례가 빈번하기에,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를 지켜보며 선수의 꾸준함을 평가하는 것은 결코 과하다고 할 수 없다. 자기 관리는 모든 스포츠 선수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며, 오랜 기간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능력은 월드클래스 가치를 더욱 견고히 다져준다.
개인의 감성과 평가의 주관성

물론 이 두 가지 틀을 모두 충족했음에도 시간이 흐르며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가 있다면, 그를 여전히 월드클래스로 불러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라힘 스털링의 예가 대표적이다. 그는 분명 월드클래스 레벨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어떤 팬들은 현재 성적을 들어 더 이상 그를 월드클래스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이전의 성과와 임팩트를 기억하며 스털링을 여전히 월드클래스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논의는 결국 개인의 감정과 취향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지금도 월드클래스인가”라는 평가는 늘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한순간의 실수와 이미지의 변화
하지만 한 번의 부진이나 특정 순간의 실수 때문에 과거의 모든 성취가 잊히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중요한 토너먼트나 빅매치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 그 장면이 팬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 선수의 이미지가 급격히 하락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월드클래스 지위를 완전히 지워버리기엔 다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중소클럽과 빅클럽의 경계

한편으로, 소위 ‘빅클럽’이 아닌 곳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면서도 월드클래스로 거론되는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이미 바디는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라는 동화를 써냈고, 유럽대항전 경험은 물론 잉글랜드 대표팀까지 소화하며 무려 10년 넘게 레스터 시티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런 이력을 놓고, 한때 분명 월드클래스 급이라 부를 만했는데 지금도 그 칭호가 타당한지는 결국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시대가 지나며, 만약 누군가가 지금도 바디를 월드클래스라고 부른다 해도 그 역시 존중받아야 할 의견일 것이다.
미래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
또 다른 예시로, 뉴캐슬 유나이티드 소속 알렉산더 이삭은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눈부신 득점력을 선보이고 있어 많은 팬들이 그를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를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직 유럽대항전 무대나 스웨덴 국가대표팀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대회에 꾸준히 출전해 본 경험은 거의 없다. 만약 그가 앞으로도 지금의 기세를 이어가 유럽대항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대표팀이 본선에 진출하는 대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그때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월드클래스라는 타이틀을 달게 될 것이다.
현대 축구 시장의 현실

다만, 요즘 이적 시장 흐름을 보면 중소클럽에서 잠깐이라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금세 빅클럽으로 이적해 버린다. 그래서 빅클럽 소속이 아닌 채로 월드클래스 기량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사례는 점점 더 희소해지고 있다. 가장 단적인 예로, 이번 시즌 전반기에 키커지에서 월드클래스(WK) 등급을 부여받은 마르무시 또한 프랑크푸르트에서 반 시즌 만에 맨체스터 시티로 자리를 옮긴 사례가 있다. 결국, 현대 축구 환경에선 큰 클럽으로 이적해 최고 무대에서 제 기량을 입증해야만 월드클래스라는 이름이 더욱 널리 통용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겠다.
월드클래스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자긍심
결국 월드클래스에 관한 판단은, 각자가 세운 기준과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기준이 무엇이든, 선수를 평가하고 등급을 나누는 행위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요소다. 누군가는 손흥민을 월드클래스라 부르고, 누군가는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이런 다채로운 목소리야말로 축구판을 풍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수든 자신이 월드클래스라는 긍지를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 뛰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팬들은 그런 선수들을 지켜보며, 각자의 잣대로 ‘월드클래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