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에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오랜 전통을 지닌 대표 종목이지만, 관중 수만 놓고 보면 야구가 훨씬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2024년 통계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한국 프로야구(KBO 리그)는 1천만 명이 훌쩍 넘는 총관중을 동원해 단순 수치만으로도 축구(K리그1, K리그2 합산)보다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평균 관중 면에서도 KBO는 약 15,000명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며 K리그1의 11,000명 수준을 뛰어넘는다. 물론 K리그2까지 합산해도 약 300만 명 내외에 머무는 상황을 감안하면, 두 종목 간 격차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렇듯 프로야구가 많은 인파를 끌어들이는 이유 중 하나는 경기 일정의 잦은 편성이다. 야구는 팀당 경기 수가 축구에 비해 훨씬 많다 보니, 누적 관중이 크게 늘어난다. 더욱이 구단과 스폰서가 연계해 내놓는 상품이나 이벤트도 다양하게 진행되는데, 이는 입장권 판매 외에 굿즈나 식음료 매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광고와 방송 중계권 판매 역시 리그 전반의 매출에 큰 몫을 차지해, 결과적으로 야구가 산업적 측면에서 더욱 견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된다.
콘텐츠 창출과 마케팅 경쟁력

프로야구 경기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플레이가 ‘이닝’이라는 구간으로 나뉘어 있어, 방송사나 온라인 플랫폼이 그 사이사이에 이벤트를 배치하기 수월하다. 치어리더가 무대를 장식하거나, 각종 스폰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에도 야구는 탁월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장기간 펼쳐지는 시즌 내내 홈런, 삼진, 투수 교체, 신인 선수 발굴 등 다양한 ‘이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다.
반면 축구는 공이 경기장 안에서 거의 끊김 없이 움직이는 스포츠 특성상,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매번 경기를 세부적으로 쪼개는 일이 쉽지 않다. 90분 안에 벌어지는 장면들을 다시 분석하는 데에는 해설이나 하이라이트 정도가 전부이며, 이닝 교대처럼 광고를 대놓고 삽입할 구간도 거의 없다. 이는 기업과 미디어 입장에서 축구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에 다소 불리한 측면으로 작용한다. 또한, 선수 개인의 성장 스토리를 자주 조명받는 야구와 달리, 축구는 해외 스타나 외국인 감독 등 외부 요인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적 크다 보니, 꾸준히 국내 팬들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해외 리그 관전 문화와 국내 시장의 상호작용

야구계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MLB)가 ‘절대 1강’으로 자리 잡고 있고, 한국 선수들이 이 무대에서 활약하면 국내 야구팬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류현진, 김광현 같은 이름이 메스컴에 오르면, 곧바로 KBO 리그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돌아온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이 MLB로 진출하거나, MLB 선수가 KBO로 오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두 시장이 상호교류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야구팬 입장에서는 새벽에 MLB를 시청하고, 주말에는 KBO 경기장에 직접 방문하는 ‘이중 소비’도 가능해졌다.
축구는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같은 유럽 무대가 워낙 인기가 높고 경쟁도 치열하다 보니, 손흥민이나 김민재 같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에서 빛을 볼수록 한국 프로축구가 수혜를 입기보다 오히려 국내 팬들을 빼앗긴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팬들이 밤늦게까지 유럽 축구를 시청하는 것엔 열광하면서도, 정작 주말 낮에 열리는 K리그 경기장에는 좀처럼 발길을 옮기지 않는 현상이 지속된다. 결국 축구의 글로벌 흥행이 역설적으로 K리그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드는 셈이다.
팬덤 구조와 지역 연고 정착의 과제

흥미로운 점은, 국가대표팀 경기만 놓고 보면 축구가 한국 사회에서 야구보다 훨씬 큰 화제성과 응집력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월드컵 예선이나 A매치가 열릴 때마다 온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모이거나 광장에 운집해 응원전을 펼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기가 K리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 축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음에도, 정작 그 에너지가 K리그 흥행으로 전이되지 못하고 사그라든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K리그의 지역 연고 정책이 초기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연고 이전이나 기업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 수도권 중심 구단들의 편중은 팬들에게 ‘내 지역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실패했다. 반면, 야구는 삼성, 롯데, 두산, LG 등 굴지의 기업들이 연고지를 확실하게 뿌리내린 덕분에 지역 밀착형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가족 단위 관객이 찾기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응원 문화 역시 비교적 개방적이어서 새로운 팬이 유입되기 쉽다는 점도 안정적인 흥행의 비결이다.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야구가 축구보다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은 경기의 특성이나 스포츠 전통뿐 아니라 마케팅, 응원 문화, 해외 리그와의 연계성까지 두루 영향을 미친 복합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야구는 특유의 ‘오락성’을 극대화하며 방송사와 스폰서 모두에게 매력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고, 메이저리그와의 적극적인 교류가 팬층을 견고히 다졌다. 축구는 국가대표팀으로 대변되는 ‘국가 단위 자부심’은 잘 살렸으나, 정작 K리그 차원에서는 지역 연고 정착과 대중화에 한계를 드러냈다. 향후 K리그가 시장 경쟁력과 팬덤을 동시에 확대하려면, 보다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과 열린 응원 문화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것이다.